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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성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확정

서울시, 전문박물관 건립 등 종합계획 추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국기헌 기자 = '서울(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문화재청은 우리 정부가 지난달 14일에 제출한 서울성곽에 대한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신청을 유네스코가 받아들였다고 4일 말했다. 앞서 지난 4월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회는 서울도성을 세계유산 잠정목록 대상으로 선정했다. 세계유산 잠정목록(Tentative List)이란 '세계문화유산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과 동 협약 이행지침에 따른 제도로, 세계유산으로 가는 최소자격의 성격을 갖는다. 각국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유산에 대해 이 이행지침이 규정한 요건을 갖춘 신청서를 제출하면 유네스코 사무국은 심사를 거쳐 잠정목록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2012-12-04 08:52
연합뉴스 미디어랩은 서울시의 '한양도성 보존ㆍ관리ㆍ활용 종합계획' 확정에 따른 문화재 복원사업에 착안해 '서울 한양도성 걷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노선은 봄, 여름이면 한양 사람들이 짝을 지어 성 안팎의 경치를 구경했다는 '순성놀이'를 기초로 제작했으며, 목멱 구간, 인왕 구간, 백악 구간, 낙산 구간 총 4개의 구간을 제공 한다.
목멱구간(광희문 - 숭례문)

총 길이:5.4km 소요 시간:3시간

600년 도읍지
한양을 마주하다

광희문을 출발해 장충동 성곽 길에 이르면 잘 보존된 성곽과 탐방로를 만난다. 남산(해발 262m) 구간은 계단이 많지만, 숲이 우거져 공기가 상쾌하다. 남산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야경은 꼭 봐야 할 서울의 진풍경이므로 놓치지 말자.

인왕구간(숭례문~창의문)

총 길이:5.3km 소요 시간:3시간 30분

과거와 현대의 공존,
인왕 자락에서 숨 쉬다

서울 한양도성의 정문인 숭례문에서 출발하면 곧 정동길을 만나게 된다. 정동길에는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 성곽은 인왕산(해발 338m) 능선을 타고 상승과 하강을 거듭, 거친 곡선을 그리며 창의문에 이른다.

백악구간(창의문~혜화문)

총 길이:4.7km 소요 시간:3시간

백악마루 아래
서울이 열리다

내사산(內四山) 중 주산(主山)에 해당하는 백악산(북악산, 해발 342m)의 급경사를 따라 성곽이 놓였다. 정상 백악마루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뛰어나다. 창의문 안내소와 말바위 안내소 사이는 신분증이 있어야 통행할 수 있으므로 집을 나서기 전로 다시 한번 확인하자.

낙산구간(혜화문~광희문)

총 길이:3.2km 소요 시간:2시간

역사와 패션·문화가
만나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완경사 성곽 탐방로 구간이다. 사대문 중 유일하게 옹성이 있는 흥인지문을 거쳐, 수구문이라 불리기도 했던 광희문까지 걸을 수 있다. 평지 구간의 성곽이 많이 훼손돼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 한양도성의 시작

1392년 7월, 고려를 무너뜨리고 개성 수창궁에서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한 달도 못되어 천도를 결심하고 태조 3년(1394) 10월 도읍지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긴다. 이후 태조 4년(1395) 9월에는 궁궐, 종묘, 사직 등을 완성하고 다음 달에는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한다. 태조 5년(1396) 1월 9일부터 본격적인 서울 한양도성 축성 공사를 시작하여 49일 만인 2월 28일 대부분 공사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공사 기간도 짧았고 한겨울에 시행했던 탓에 부실한 곳이 많았으므로 같은 해 8월 6일부터 9월 24일까지 49일간 제2차 축성 공사를 했다. 이때 서울 한양도성의 사대문과 사소문도 완성됐다.

서울 한양도성의 축성

태조 시대의 축성 공사는 총 길이가 5만 9500척으로 600척(약 180m)을 한 구간으로 모두 97구간이 시행됐는데 백악산(북악산) 정상부터 동쪽으로 낙산, 남산, 인왕산의 순서로 천자문(天字文)의 천(天)자에서 조(弔)자까지 각각 구간의 이름을 붙였다. 공사 구간마다 성돌에 공사 책임자의 이름과 직책, 공사를 담당했던 고을의 이름, 공사 일자 등을 글자로 새겨 넣었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후 세종 4년(1422)에는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바꾸고 성벽도 높였으며, 숙종 30년(1704) 3월부터 약 5년에 걸쳐 대대적인 정비를 진행했다.

서울 한양도성의 훼손 그리고 복원

서울 한양도성은 조선 왕조 기간 꾸준하게 정비되고 보수돼 왔지만, 일제강점기 동안 도시계획이라는 구실로 여러 곳의 성벽이 헐렸다. 또 전차 노선이 생기면서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주변도 훼손됐다. 광복 후에도 한국전쟁과 무분별한 도시화의 여파로 인한 훼손은 계속됐다. 그러다가 1975년부터 1982년까지 서울 한양도성 복원사업이 큰 규모로 이루어졌고 이후 혜화문과 광희문의 복원을 비롯해 부분적인 부분공사를 지속했다. 2000년 이후 서울 한양도성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서울 한양도성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