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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소추 1년] 역사 바꾼 막전막후…탄핵대오 묶은 '촛불민심'

파도에서 해일로 커진 최순실 게이트…"탄핵까지 갈 줄 아무도 몰랐다"
20대 총선 여소야대 국회가 '단초'…민주, 최순실 게이트 비공개TF 가동
'2일 또는 9일' 명운 가른 표결 택일…비박계 표심 고려해 9일로 결정
치열한 표계산 '찬성의원 리스트' 관리…野 자체파악보다 찬성표 더나와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이신영 서혜림 기자 = "누구도 탄핵안이 발의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고, 또 누구도 탄핵안이 통과될지 장담하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1년을 이틀 앞둔 7일 당시 제1야당 대표로 탄핵을 이끌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최순실 게이트가 시작될 때만 해도 정치적 파장은 예상했지만, 탄핵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고 떠올렸다.

그만큼 지난해 탄핵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긴박하게 흘러갔고, 급류에 휩쓸린 여야 의원들 역시 살얼음판을 딛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 내딛는 수밖에 없었다.

◇ 여소야대 국회, 정국 급랭…탄핵의 '전조'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말이지만, 정치권 관계자들은 20대 총선 이후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지면서 그 단초가 마련되기 시작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정부와 거야(巨野)로 무게중심이 넘어온 국회 간의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여야는 김재수 농림부 장관 후보자 해임건의안 문제 등을 두고 정면으로 충돌한다.

비슷한 시기 민주당에서는 언론에 조금씩 보도되기 시작한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해 비공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으며, 도종환·박범계·조응천·손혜원 의원 등이 여기에 참여해 각종 의혹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결국,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조응천 의원이 "대통령 취임식에서 입었던 340만원짜리 한복을 미르재단 이사에 주문해 대통령에게 전해 준 당사자가 최순실씨"라고 발언했고, 이후 민주당은 국정감사에서 최순실 게이트 공세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이에 반발해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국정감사를 보이콧하는 등 강경하게 응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최순실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여론은 거세지기만 했다.

◇ '2일이냐, 9일이냐' 운명을 가른 표결일 선택

11월부터는 박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광장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내에서는 탄핵안 발의에 대한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여야 원내대표 간의 합의로 12월 2일과 9일에 국회 본회의를 잡아뒀는데, 이 때문에 야권 논의의 초점은 2일에 탄핵안을 통과시키느냐, 9일에 통과시키느냐로 좁혀졌다.

민주당 내에서는 2일 표결 기류가 강했지만, 국민의당에서 9일 표결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결국 야권은 9일 탄핵안을 표결에 부치게 된다.

당시 원내대표로서 국민의당을 이끌던 박지원 의원은 통화에서 "새누리당내 비박(비박근혜)계 의원 표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며 뒷얘기를 털어놨다.

박 의원은 "1년 전 당시 야 3당의 표를 아무리 끌어모아 봤자 탄핵안 가결을 위한 160석에 한참 모자랐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비박계인 김무성 의원과 접촉해 설득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새누리당 내부 기류를 살펴보니, 박 전 대통령의 '4월 퇴진론'이 터져 나오면서 비박계에서는 12월 7일까지 박 전 대통령의 입장을 기다리겠다는 방침을 정했더라. 그 이전인 2일에는 투표를 해봤자 비박계가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결국은 '2일 부결'이 아닌 '9일 가결'을 택하자고 민주당과 정의당을 설득했다"고 회고했다.

본회의 표결 날짜를 두고 균열양상까지 보였던 야3당은 '9일 탄핵 가결'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주춤했던 탄핵 행보에 다시 박차를 가했다.

◇ 치열한 물밑 표 계산…"찬성의원 명단 절대 보안"

본회의 탄핵안 표결일이 결정된 뒤로는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의 피 말리는 물밑 표 계산이 벌어졌다.

야당 의원들은 틈나는 대로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을 접촉해 탄핵에 동참할 것을 설득했고, 탄핵 반대파 의원들도 여당의 이탈표를 막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우 의원은 당시 상황에 대해 "아예 탄핵에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는 의원들의 명단을 작성, 그때그때 상황이 바뀔 때마다 동그라미, 세모, 엑스 표시를 하면서 계산을 했다"고 떠올렸다.

특히 우 의원은 "이 명단은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혼자서만 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외부에 유출될 경우 당시 청와대나 정보기관의 방해공작이 있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뒀다"고 설명했다.

결국, 운명의 날인 12월 9일, 우 원내대표는 오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탄핵에 찬성하는 220~225표를 확보했다"고 다른 의원들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실제로 본회의장에서는 이보다 10여 표 많은 234표의 찬성표가 나왔다.

우 의원은 "거국중립내각론, 4월 사퇴론 등 중간중간에 탄핵의 동력이 떨어질 만한 고비들이 있었지만, 결국 모두 박 전 대통령이 이를 거부했다"며 "민심은 악화일로로 치달았고, 새누리당 의원들까지 등을 돌리면서 애초 계산보다도 더 많은 표로 탄핵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한때 흔들린 비박계…12월3일 성난 촛불민심 확인하고 탄핵열차 'Go'

박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없으면 탄핵이 애초에 불가능했다. 금메달을 준다면 비박계 의원들에게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많이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당시 비박계의 움직임은 탄핵안 가결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새누리당 내에서 탄핵론이 처음으로 공론화된 것은 11월 13일 비박계가 중심이 된 비상시국회의에서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당시 회의에서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의 길로 가야 한다"며 탄핵을 공식화했고, 이후 비박계는 탄핵 열차에 올라탔다.

그러나 전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등 원로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명예퇴진을 제안하고 박 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해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히면서 비상시국회의는 주춤했고, 새누리당은 '4월 퇴진·6월 조기 대선'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비박계의 움직임도 멈추는 듯했다.

그러나 흔들리던 비박계를 돌려세운 것은 촛불 민심이었다.

12월 3일 232만명이 넘는 시민이 박 전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머뭇거리던 비박계도 다시 탄핵열차에 탑승하기로 했다.

9일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결국 탄핵안 찬반에 따라 자율투표를 했고, 여기서 나온 비박계의 찬성표가 탄핵안 통과에 결정적인 한 축이 됐다.

당시 비상시국위 대변인 격이었던 한국당 황영철 의원은 통화에서 당에서 배출한 대통령의 탄핵에 나설수 밖에 없었던 이유로 "국민적 요구가 컸다"는 점을 꼽았다.

황 의원은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국정을 잘못 이끌어 왔다는 것에 대한 심한 자괴감도 작용했다"며 "주말 집회를 통해 성난 민심을 확인하고,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대오를 다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hysup@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12/07 06: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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