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불뚝이 산타클로스(Santa Claus)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아마도 ‘경청(傾聽)’일 것이다. 전 세계 어린이들의 소망을 다 들으려면 웬만한 듣기능력으로는 부족하
다. 그래서인지 20세기 초 산타의 고향으로 알려진 핀란드 코르바툰투리(Korvatunturi)는 사람의 귀(耳)를 닮은 형상이었다. 핀란드 사람들은 러시아 접경지대에 위치한
해발 483m의 고원지대인 코르바툰투리에 산타가 살고 있다고 여겼다.
‘꿈과 순수의 시대’를 상징하는 산타는 1950년대부터 외떨어진 산 속을 떠나 바깥나들이에 나선
다. 핀란드 북부 지역인 라플란드의 관문이자 북극권 기준선(Arctic Circle)이 지나는 로바니에미를 자주 방문한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 로바니에미에 아예 집무실을
마련한다.
산타가 로바니에미에 새 거처를 마련한 까닭은 전쟁에 기인한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로바니에미가 선택한 회생의 길은 관광산업이었고, 산
타클로스는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다. 로바니에미 사람들은 제대로 형태를 갖춘 건물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토화된 폐허에서 다시금 도시를 일구어냈다. 핀란드의
현대 건축과 디자인을 대표하는 알바 알토(Albar Alto, 1898~1976)가 도시의 아웃라인과 주요 건축물을 설계했다. 그는 순록의 뿔을 형상화한 도로를 중심으로 유럽 어
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도시를 빚어냈다. 그리고 코르바툰투리의 산타를 유치해 도시의 아이콘으로 삼았다.
현재, 인구가 약 5만8000명인 로바니에미에는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특히, 연말이면 산타마을을 찾아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로바니에미로 향하는 전세기로 인해 핀란드 하늘길
이 정체될 정도다. 시간당 최고 30편의 여객기가 핀란드 상공으로 진입하는데, 산타를 만나려고 비행기들이 길게 줄을 선 형국이다.

산타마을(Santa Claus’ Village)은 1985년 로바니에미 북쪽 8㎞ 지점의 전나무 숲 속에 조성됐다. 뾰족한 지붕을 갖춘 통나무 오두막이
여러 채 세워졌고, 겨울이면 거대한 눈사람들이 파수꾼처럼 거리에 등장했다. 산타 집무실, 산타우체국, 기념품 가게, 레스토랑 등으로 아담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산
타 집무실은 최근 확장 공사를 마치고 새롭게 문을 열었다. 새 집무실은 산타 접견 대기실을 대폭 확장했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산타를 만나기 위해 매서운 추위
를 참아가며 문밖까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던 방문객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산타 집무실의 나무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산타클로스가 커다란 냄비가 걸린 벽난로 옆
의자에 앉아 손님을 맞이한다. 거구에 배꼽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수염을 기르고 붉은 고깔모자와 조끼를 입고 있다. 그 뒤로는 빛바랜 옛날 지도가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산타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을 웃음으로 맞이하며 짧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쪽엔 선물 상자가 가득 든 자루가 쌓여 있고, 산타의
손자뻘 되는 비서가 사진을 촬영했다.
로바니에미의 산타는 박학다식했다. 간단한 인사말은 수십 개의 언어로 구사했고, 각국의 기본 정보는 꿰고 있었다. 방문객의 나
라를 두툼한 세계지도에서 찾아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와 수염에 대해 묻자 “무수히 지나온 크리스마스만큼 많으며, 수염은 가끔 목도리 대용으로 사용한
다”고 했다. 수년 전 방문했다는 한국에 대해선 “자장면 먹을 때 수염이 걸려 아주 불편했다”며 너털웃음을 쳤다.
현재, 로바니에미의 산타는 주민 선거로 선출되는
데 동시에 여러 명의 산타가 활동한다고 알려져 있다. 산타마을에서 관광객을 접견하는 산타, 세계 각국을 순례하며 홍보활동을 펼치는 산타, 휴가 중인 산타가 따로 있
다고 한다. 여러 명의 산타가 동시에 활동하기에 산타들의 개인 신상 명세는 밝히지 않는 게 관례다. ‘산타는 선의와 희망을 나누어주는 존재이기에 개인적인 신상은
의미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로바니에미에선 꼭 크리스마스가 아니더라도 산타를 만날 수 있다. 산타는 사계절 대부분을 로바니에미에서 보낸다. 봄에는 자작나무 숲
속에서 딸기와 버섯을 따먹고, 여름이면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호숫가에서 수영복을 입고 낚싯대를 드리운다. 로바니에미 사람들의 일상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생활을
영위한다.
산타를 접견한 후 들러야 할 곳은 산타우체국이다. 세계 각국에서 산타클로스에게 보낸 편지가 집결되는 곳이자 산타 스탬프 엽서를 세계 각지로 보내는 곳이
다. 지난해 195개 국가로부터 약 75만 통의 편지가 이곳으로 배달됐다. 정확한 주소를 쓰지 않아도 수취인 난에 ‘산타클로스’라는 단어만 있으면 대부분 이곳으로 전
달된다.
산타우체국은 각국에서 날아온 편지를 정리해 이듬해 봄부터 답장을 보내준다. 엘프(Elf)로 불리는 요정들이 편지를 분류하고 선별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등 9개 언어로 답장을 작성한다. 일괄적으로 인쇄된 답장에는 로바니에미의 사계와 산타의 일상이 적혀 있다. ‘……이곳 북극권에 여름이 오면 겨울 동안 입었
던 두꺼운 빨강 외투를 벗고 얇은 티셔츠, 순면 반바지로 갈아입는단다. ……가을엔 좀 더 따뜻한 옷을 꺼내 입고 라플란드의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든 단풍을 보며 등산
을 한단다.….’
한글 답장은 올해부터 시작됐다. 산타와 요정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한글을 깨친 것은 아니다. 로바니에미에 거주하는 교민 김정선 씨가 엘프로 발탁되면
서 실현된 일이다.
“한국에서 보내오는 편지는 약 3000통인데 유치원 아이들이 선생님 지도하에 쓴 단체편지가 재밌어요. 글을 아직 모르는 아이들은 로봇 사진을 오려
붙여 보내죠.”
각국에서 보내온 편지 중 우표가 붙은 봉투는 30개씩 묶여 3유로에 우표 수집가들에게 판매되고, 그 수익금은 유니세프 기금으로 적립된다. 최초의 한
국인 요정은 “산타에게 편지를 보낼 때는 요금 스티커가 아닌 우표를 붙여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 산타우체국 주소 - Santa Claus’ Main Post Office, 96930 Napapiiri, Finla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