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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세상과 싸운 페미니스트 나혜석의 투쟁기

'나혜석, 글쓰는 여자의 탄생'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남자는 칼자루를 쥔 셈이요, 여자는 칼날을 쥔 셈이니 남자 하는 데 따라 여자에게만 상처를 줄 뿐이지. 고약한 제도야, 지금은 계급 전쟁 시대지만 미구에 남녀 전쟁이 날 것이야."

한국 근대 작가이자 화가, 독립운동가, 페미니스트였던 나혜석(1896∼1948)이 1933년 2월 28일자 조선일보에 발표한 '모델-여인일기'에 쓴 내용이다. '미투' 고발로 뜨거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100년 전에 예견한 것이다. 그는 여성의 힘이 턱없이 부족했던 구한말 조선에 태어나 남성이 지배하는 세상과 온몸으로 전면전을 벌였다. 그런 그의 삶과 사상을 돌아보는 책 '나혜석, 글쓰는 여자의 탄생'이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나혜석이 쓴 열일곱 편의 소설과 논설, 수필, 대담을 뽑아 현대어로 순화해 담았다. 근대 여성 지식인을 연구해온 장영은 성균관대 한국학연계전공 초빙교수가 책을 엮었고 나혜석이 살았던 당시의 시대상을 전하는 해설을 덧붙였다.

다방면에서 재능을 타고난 그는 남성들보다 돋보인다는 이유로 평생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고, 견고한 남존여비의 틀에 맞서 자신이 원하는 일과 사랑을 당당히 추구하는 삶으로 부당한 질시와 비난을 받으며 고된 일생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이렇게 돌아본다.

"나는 열여덟 살 때부터 20년간을 두고 어지간히 남의 입에 오르내렸다. 즉, 우등 1등 졸업 사건, M과 연애 사건, 그와 사별 후 발광 사건, 다시 K와 연애 사건, 결혼 사건, 외교관 부인으로서의 활약 사건, 황옥(黃鈺) 사건, 구미 만유 사건, 이혼 사건, 이혼 고백서 발표 사건, 고소 사건, 이렇게 별별 것을 다 겪었다. (중략) 그 건강은 쾌활 씩씩하던 것이 거의 마비까지 이르렀고, 그 정신은 총명하고 천재라던 것이 천치 바보가 되고 말았다." (본문 218∼219쪽)

나혜석
나혜석[연합뉴스 자료사진]

특히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그의 삶을 파탄 나게 한 결혼과 이혼 과정을 보면 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는지 알 수 있다.

그는 깊이 사귄 연인 최승구가 세상을 떠나자 슬픔에 빠졌는데, 그의 앞에 김우영이 나타나 열렬히 구애한다. 그러자 결혼 조건으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일생을 두고 지금과 같이 나를 사랑해 주시오.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마시오.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는 별거케 하여 주시오."

두 사람은 결혼해 11년간 꽤 평화로운 생활을 했으나, 나혜석이 한때 사랑에 빠진 남성 최린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빌미가 돼 파국을 맞는다.

나혜석은 대중잡지 '삼천리'에 발표한 '이혼고백장'과 '신생활에 들면서'에서 자신이 경험한 결혼과 가부장제의 모순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를 괴롭힌 것은 시댁 식구들의 심한 경제적 의존과 시어머니·시누이와의 갈등이었다. 나혜석은 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돈을 벌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남편 김우영은 바깥에서 자유롭게 기생들을 만나 유흥하면서 아내가 한때 다른 남자를 좋아하고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무조건 이혼을 요구한다. 나혜석이 이전에 작품 활동을 하며 벌어들인 돈으로 가계를 상당 부분 지탱했음에도 이혼할 때는 한 푼도 나누지 못하고 빈털터리로 쫓겨난다.

나혜석은 '이혼고백장'에서 조선 남자들의 부조리를 이렇게 꼬집는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min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3/09 11:0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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