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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작가 "첨부파일 클릭 안하게 됐어요"

'유령'의 김은희 작가(오른쪽)와 남편인 장항준 감독

'싸인' 이어 '유령' 성공.."'싸인'보다 세배 힘들어"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컴퓨터 전문가는 안됐고요, 대신 일단 메일에 붙은 첨부파일은 클릭하지 않게 됐어요. 또 회원가입하라는 것도 잘 안 하게 되더군요. 아예 컴퓨터도 웬만하면 꺼놓고 살게 됐습니다. 주변에서 누가 네 컴퓨터를 해킹하겠냐고 핀잔을 주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지난 9일 막을 내린 SBS 수목극 '유령'의 김은희(40) 작가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첨단 사이버범죄를 다룬 드라마를 끝냈지만 컴퓨터에 대해 이전보다 더 알게 된 거라고는 함부로 첨부파일을 열어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란다.

"어떻게 끝냈는지 저도 신기해요. 쓰는 내내 '정말 끝낼 수 있을까' 걱정하다 보니 어느새 끝났어요.(웃음)"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지만 '유령'을 본 사람이라면 작가가 얼마나 많은 품을 들였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러 건의 사이버범죄를 글로 구성하고 그것을 영상으로 옮겨내는 작업은 감정과 대사에 기대는 로맨틱 코미디를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 더구나 그는 스스로 '컴맹'이라 말하는 사람이다.

전작 '싸인'에서 부검의의 세계를 그리며 취재력과 구성력을 보여준 그는 이번에도 사이버범죄의 세계를 파고들어 그것을 드라마화하는 데 성공했다.

"'싸인' 때 고생한 것을 다 잊어서 그런지 '유령'이 '싸인'보다 세 배는 힘들었어요. 더 복잡했고 글로 풀어내는 게 만만치 않았어요. 또 최대한 쉽게 풀어써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고요."

사실 시작은 '얼굴이 바뀌는 얘기'였다. 그 아이템을 경찰청 특수수사과를 무대로 풀어보려고 시놉시스까지 썼지만 왠지 살아있는 이야기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PD님과 시놉을 놓고 얘기하는데 지금의 이야기 같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어요. 그래서 막연하게 경찰청을 찾아 사이버수사대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정말 살아있는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거죠. 그렇다면 원래 하려던 이야기에 사이버수사를 접목시키자 싶었는데 그게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고행이 시작됐거든요.(웃음)"

6부까지 대본을 썼을 때 촬영이 시작했다. 글로 쓰기도 어려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버공간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옮기는 것도 국내 드라마에서는 전인미답의 길이었다.

"촬영 초반에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때부터 과연 계속 영상화가 잘 될까, 이러다 중간에 못하는 거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런 걱정을 안은 채 계속 쓰다 보니 어느새 끝이 났어요. 대본을 쓰면서 경찰청에서 살고 싶었지만 기밀을 다루는 곳이라 그러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디도스 공격 등 그쪽 전문가를 초빙해 브리핑을 쫙 듣고 그 후에는 사건을 짜고 살을 붙일 때마다 이게 맞는 건지 감수를 받았죠."

김 작가는 에피소드에 강하다. '싸인'에 이어 '유령'도 여러 에피소드가 녹아있고 그것들이 서로 얽혀 큰 그림을 그린다. '미드'(미국 드라마')에서 익히 본 패턴이지만 미드가 집단 창작 체제인 것을 감안할 때 김 작가의 작업은 자신의 표현대로 '고행' 그 자체일 듯 하다.

"'싸인' 때도 부검 이야기가 매회 들어가길 바랐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너무 힘들어 떨어져 나가게 됐어요. 이번에도 사이버범죄 이야기가 매회 다양하게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는데 역시나 어려웠죠. 다시 쓸 수 있다면 처음으로 되돌리고 싶어요. 그래서 좀더 잘 쓰고 싶어요."

'유령'은 폭발사고로 김우현(소지섭 분)과 박기영(최다니엘)이 뒤바뀌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죽은 김우현 대신 김우현의 외양으로 성형한 박기영이 김우현 행세를 하면서 다른 삶을 사는 과정을 그렸다. 사이버범죄와 함께 애초 김 작가가 하려 한 '얼굴이 바뀐 얘기'가 펼쳐진 것이다. 이는 곧 정체성의 문제였다.

"'싸인'이 탐욕을 다뤘다면 '유령'은 '나는 누구일까', 내 정체성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자는 마음으로 썼어요. 내 이름 석자 외에 인터넷상에서는 아이디와 댓글로도 나는 존재하잖아요. 그 익명성이 곧 정체성의 문제인데 사이버범죄를 다루면서 애초에 하고자 했던 정체성 문제에 훨씬 더 잘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익명성 뒤에 숨은 인터넷의 무서운 역기능을 조명하긴 했지만 김 작가는 악플이나 사이버범죄 때문에 인터넷의 순기능이 가려지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악플을 다는 사람이 고의로 그런 짓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다 보니 언쟁이 붙어서, 또는 술김에 그런 짓을 하는 게 아닐까요.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하지 말아야죠. 우리 드라마가 댓글을 달 때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인터넷의 역기능이 많다고 하지만 전 순기능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해요. 인터넷 덕분에 사람들이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더 많은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됐잖아요."

1998년 방송작가로 시작한 김 작가는 남편인 장항준 감독과 함께 쓴 '위기일발 풍년빌라'와 '싸인'을 거치며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가 주류를 이루는 국내 드라마계에 장르 드라마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걸 쓰니까 살아남는 것 같아요. 제가 로맨틱 코미디는 잘 못 쓰거든요. 남자와 여자를 놓고 어떻게 엮어야 할지 모르겠어요.(웃음) 그러니 계속 이런 (고생스러운) 것을 써야 할 텐데…."

차기작도 만만치 않은 것일 듯 하다.

"사극을 구상했어요. 좀 특이한 사극.(웃음) 그리고 남편과 미드 '24'같은 이야기도 기획해봤고요. 그런데 더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옆에서 그러네요."

pretty@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2/08/10 07:0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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