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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늘] 공산주의자에서 개발독재 총통의 길까지

1월 13일에는 이런 일이

장징궈의 연설 모습
장징궈의 연설 모습

(서울=연합뉴스) 장징궈(蔣經國).

장제스(蔣介石)의 장남이며 타이완의 제2대 총통입니다. 1975년 장제스의 사망 후 총통대리를 맡다가 1978년 총통에 선출돼 1988년 1월 13일 사망하기까지 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장징궈는 젊은 시절 골수 공산주의자였습니다. 1920년대 모스크바 중산대학 유학 시절에는 덩샤오핑(鄧小平)과 나란히 공산주의 혁명이론을 공부했습니다. 형제 같은 동료였습니다. 소련 공산당에 정식 입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장과 덩, 두 사람이 몇십 년 후 같은 시기에 양안의 지도자가 될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1937년 장징궈가 귀국하자 장제스는 "붉은 물을 빼야 한다"며 다량의 중국 고전 공부를 시켰습니다. 고전 덕인지는 몰라도 이후 장징궈에게 공산주의 활동은 보이지 않습니다.

타이베이 외곽의 장제스 묘 [EPA=연합뉴스]
타이베이 외곽의 장제스 묘 [EPA=연합뉴스]

아버지와 함께 타이완으로 물러난 장징궈는 국방부장, 국민당 중앙위원 등 요직을 거치며 권력 기반을 쌓았습니다. 장제스 사망 후 정적들을 물리치고 총통대리, 총통 당선, 총통 재선의 길을 걸었습니다.

대만의 산업화에 기여해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뤘습니다. '아시아의 네마리 용'이 되는 터를 닦았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청렴함을 꾸준히 유지해 지금도 대만인들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입니다.

말년에는 중국 본토와도 관계에서도 '통로'를 열기 시작해 1987년 11월 대륙여행 금지령을 폐지했습니다. 이듬해 1월 13일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덩샤오핑은 "장징궈가 살아 있었더라면 제3차 국공합작도 가능했다"며 애석해 했다고 합니다.

사망 직전의 장징궈
사망 직전의 장징궈

하지만 개발독재, 철권통치의 그림자도 함께 드리운 정치인입니다. 대만에서 야당인 민주 진보당은 1986년에야 창당했고, 아버지 장제스가 선포한 계엄령도 사망 직전인 1987년에서야 해제했습니다.

하지만 꾸준한 정치개혁과 후계자 계승 등 비합리적인 독재보다는 점진적인 민주화, 국민적 단결의 길로 국가를 이끌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와 비교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장징궈 만나는 김종필
장징궈 만나는 김종필

장징궈 사망 직후 당시 명동 '자유중국' 대사관 조문
장징궈 사망 직후 당시 명동 '자유중국' 대사관 조문

그런데 2015년에 장징궈와 관련된 논란이 하나 중국 언론을 장식했습니다.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 있는 장징궈의 옛집, 2층짜리 별장형 양옥에 맥도날드가 들어선 것입니다. 웃지 못할 역사의 한 단편입니다.

맥도날드 들어선 저장성의 장징궈 옛집 [EPA=연합뉴스]
맥도날드 들어선 저장성의 장징궈 옛집 [EPA=연합뉴스]

dohh@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1/13 10: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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