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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詩經 박사' 김언종의 장탄식

"세종대왕이 '내가 이러려고 한글 만들었나' 할 듯"

서울 행당동 개인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 [사진/임귀주 기자]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시경'(詩經)은 유교의 기본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하나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원래 3천여 편이었다고 하나 공자에 의해 311편으로 간추려졌다. 공자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시를 첫머리로 삼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다. 도대체 시경이 무엇이길래 공자는 시 읽기를 강조했을까. 또 시경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김언종(66)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는 "시경은 고대 중국인의 사회상과 사람들의 내면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며 "인간의 모든 감정이 담겨 있어 감동을 전한다"고 설명한다. 또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경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 행당동 개인사무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 사서삼경의 하나인 '시경'은 무엇인가요.

▲ 중국에는 태평성세로 알려진 요순(堯舜)시대부터 시가 있었다고 합니다. 시경은 서주 초인 기원전 11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까지 500년간 중국 땅에서 지어진 수많은 시 중에서 노래로 불린 311편을 말해요. 그중 6편을 잃어버려 305편만 남았습니다.

-- 어떤 연유로 시에 경(經)이 붙은 건가요.

▲ 한나라(기원전 206~서기 220) 때 제자백가(諸子百家) 중에 유가(儒家)를 받아들이며 시에 '경'(經)을 붙이게 됐어요. '경'이란 한자는 씨줄과 날줄이 모여 천을 짜는 모양이에요. 일반적으로 한자는 의미를 부여해 가며 뜻이 점점 커지게 되는데 '경'이란 글자는 바로 "영원불변의 법칙, 생각, 철학"을 의미해요. 시경, 도덕경, 성경, 불경 등 경이 붙은 것은 모두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죠. '경'은 가장 위대한 사상을 담은 귀한 책에만 붙이던 최고의 헌사입니다. 시에는 인간의 모든 감정이 버무려져 있죠. 정말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귀한 문학이어서 '경'을 붙였을 거예요.

-- 시경에는 주로 어떤 것이 담겨 있습니까.

▲ 시경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절반 정도가 풍(風), 남은 절반의 3분의 2가 아(雅), 나머지가 송(頌)으로 분류돼요. 풍은 풍속을 의미하죠. 당시 주나라의 수도를 포함해 총 15곳에서 민요, 민가를 채집했다고 해요. 그래서 '15국풍'이라고도 하죠. 여기에는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慾) 등 인간의 온갖 정서를 담은 시가 가득해요. 사랑, 배신, 충성, 외로움, 슬픔, 아픔 등 별의별 것이 담겨 있죠. 후세의 시는 모두 시경에 나온 시의 반복이에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당시 상상 속에서 거의 다 이뤄졌죠. 아바타, 로봇 등 모든 생각의 원형이 거기에 다 있어요. 시경을 보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뜻을 알게 됩니다. 시경의 남은 3분의 2를 차지하는 아(雅)는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을 담은 거예요. 조정 관리들의 애환이나 왕을 모시거나 국가를 위한 다양한 일을 내용으로 하죠. 나머지인 송(頌)은 주(周)·송(宋)·노(魯)나라의 조상에 대한 경배, 찬송에 관한 거예요. 주송(周頌), 상송(商頌), 노송(魯頌)으로 나뉘는데 구약성서의 '시편'과 같죠. 주송은 주나라 문왕과 무왕에 대한 가공송덕(歌功頌德, 공을 노래하고 덕을 칭송한다는 뜻)이에요. 제사를 지내며 이들의 위대함을 찬양하며 부른 노래죠. 상송은 은나라를 세운 탕왕의 공덕을 기린 거예요.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킨 후 유민들이 모여서 선조의 제사를 받들며 살라고 한 곳이 바로 송나라입니다. 마지막으로 노송은 노나라 시조인 주공 단과 그의 아들의 공덕을 기린 거예요. 주나라가 피폐해진 후에도 주나라의 문화는 노나라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해요. 주공이 아들을 보내 초대 왕으로 삼았기 때문에 제일 정통성이 있었던 거죠.

◇ "유학이 꿈꾸는 세계, 모두가 공평한 대동사회"

-- 공자가 제자들에게 시경 배우기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공자는 "너희는 어찌 시를 배우지 않느냐"면서 제자들을 꾸짖습니다. 그러면서 "시는 가이흥(可以興), 가이관(可以觀), 가이군(可以群), 가이원(可以怨)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흥(興)은 감정을 불러일으켜 감동을 만들죠. 마음으로 느낀 것을 표출할 수 있게 한다는 거예요. 관(觀)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죠. 군(群)은 사회적인 동물인 사람이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해요. 세상과 소통하며 타락에 이르지 않게 한다는 뜻이죠. 요즘 말로 하면 IQ(지능지수)보다 EQ(감성지수)가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IQ 높은 사람이 별로 없어요.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깨닫는 게 중요하죠. 원(怨)은 때때로 원망도 해야 하지만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원망도 직접 하지 말고 풍자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풍자는 은근히 꼬집는 것을 말하는데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 행동이나 생각을 고칠 수 있는 것이죠.

공자는 또 "시는 가까이는 어버이를 모시게 하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어요.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깨닫게 한다는 말이죠. 그것도 안 되면 "새, 짐승, 풀, 나무의 이름이라도 많이 알게 한다"고 했죠. 시경에는 나무 이름이 100여 종이나 나와서 자연의 원리를 알 수 있게 한다는 겁니다. 공자는 시 305편을 모두 외우고 거문고로 연주할 수 있었어요. 대단한 음악가였죠. 음악에 한번 빠지면 밥 먹는 것을 잊을 정도였다고 해요. 공자가 강조하는 예악(禮樂, 예법과 음악)에서 예는 상·하 관계, 즉 수직적인 딱딱한 것을 말하죠. 경직된 예를 풀기 위해서는 악이 필요합니다. 악의 목적은 화(和)예요. 즉 조화, 화합이죠. 음악을 들으면서 싸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긴장이 오래가면 폭발하는데 그것을 막는 게 바로 악이죠. 사회가 계속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공자의 사회관입니다. 공자가 음악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가 여기 있어요.

유학의 다른 말은 예악입니다. 우리가 좋은 사회를 만들려면 일주일의 절반은 놀아야 해요. 이것이 유학이 꿈꾸는 세계예요. 사람은 일하려고 태어난 게 아닙니다. 생산을 많이 하는 것은 많이 먹거나 배 곯는 사람을 없게 하려는 거죠. 유학은 바로 '대동사회'(大同社會)를 추구해요. 모두가 공평한 사회라는 뜻이죠. 저는 철학자 사르트르를 가장 존경합니다. 그는 강연으로 돈을 많이 벌었는데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쓰는 사람이었죠. 진정 무소유를 실천할 사람이에요. 평생 집도 없이 싼 여관에서 지내며 실컷 먹고 놀고 남은 것은 나눴어요.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잉여라고 생각해요. 쓸데없는 것을 가진다는 거죠. 당나라의 시성 두보는 '朱門酒肉臭, 路有凍死骨'(주문주육취, 노유동사골)이라고 읊었어요. 붉은 대문 안에는 술이 초가 되고 고기가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데 거리에는 얼어 죽은 해골이 나뒹굴고 있다는 뜻이죠. 유학은 생산한 것을 고르게 나눠 먹고 즐겁게 사는 것이 세상살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강의를 무료로 하거나 적게 받고 합니다. 공자나 맹자 같은 이들이 말한 이상을 알려주는 것만도 저는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 시경에 실린 시를 몇 편 소개해 주세요.

▲ 시경에 나오는 첫 번째 시는 '관저'(關雎, 물수리)예요. 이 시에 대해 주나라 문왕이 젊었을 때 배우자의 출현을 고민하다가 결국 짝을 만나고 위대한 창업을 했다고 해석하는데 이것은 한나라 때 시경을 정치교화의 수단으로 삼은 데서 나온 것이죠. 사실 이 시는 강가에서 예쁜 여자를 본 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나이의 애타는 심정을 담았을 뿐이에요. 시경의 첫 부분에 나오는 시 10여 편을 보면 친정에 가는 여인의 두근거리는 마음, 출장 간 남편을 그리는 아내의 애타는 마음, 신랑·신부가 행복하길 바라는 이웃의 소박한 마음, 이웃과 함께 일하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마음, 멀리 있는 아내를 그리는 남편의 울적한 심사 등이 담겨 있어요. 305편의 절반을 넘는 시가 당시 사회상과 사람들의 내면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야유사균'이란 시도 있어요. 노루를 잡은 사냥꾼이 예쁜 여자를 만나자 노루를 포장해 선물하고 정을 통하려 하자 아가씨가 이미 마음을 줬는데 이렇게 일을 벌이면 삽살개가 깨물까 두렵다는 내용이에요. 또 맏아들의 아내 될 여자가 너무 예쁘다고 하자 빼앗아 장가간 왕에 대해 백성들이 두꺼비 같은 놈이라고 욕하는 시도 있어요. 전쟁터에서 부모를 걱정하는 병사가 울며 쓴 시, 부모가 아들의 안부를 걱정하는 시, 수전노에 관한 시도 있습니다. 공자는 시를 사무사(思無邪)라고 했어요.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다는 뜻이죠. 시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주고 배울 점도 있다는 거예요.

◇ "詩 수십 편씩 외우는 중국 지도자들"

-- 시경을 이해하면 중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 한시의 모든 출발은 시경이에요. 이후의 한시는 시경에 있는 시에다 글자를 약간 다르게 하고 상황을 조금 바꾼 것에 불과하죠. 시경에는 인간이 느끼는 근본적인 감정이 모두 들어 있어요. 중국인은 중국을 '詩國'(시국)이라고 해요. 그만큼 시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지도자들도 시를 수십 편씩 외우고 있죠. 중국에서는 옛날에 시를 통해 전쟁, 혼인 등에 대한 의사를 표현했어요. 비유적으로 의사를 전달한 겁니다. 우리에게도 시경에 필적하는 시조라는 문학 자산이 있어요. 그렇게 위대한 것을 사장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김 교수는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는 논어의 구절을 인용해 개인연구실에 '도가재'(道可齋)란 이름을 붙였다.

-- 한문학자로서 인문학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 큰 돌이 하나 있다고 해보세요. 자연 과학자는 돌을 떼어 연대, 성분 등을 분석하고 활용해 결국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겠죠. 인문학은 이런 것을 넘어섭니다. 돌로 석가모니를 만든다면 장엄함을, 비너스를 만들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죠. 중국 항저우에 가면 남송 때 금나라에 대항한 무장인 악비의 무덤 앞에 당시 간신인 진회 부부의 철상(鐵像)을 만들어 놓았는데 사람들이 악비를 참배한 후 그 철상에 가래침을 뱉어요. 같은 돌이라도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거죠. 인문학은 희노애구애오욕이란 칠정(七情)을 버무린 진선미(眞善美)로 인간이 더 즐겁게 살고 삶의 보람을 느끼도록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문학(人文學)에서 인(人)은 사람이에요. 문(文)은 털 없는 원숭이인 사람이 강해 보이려고 몸에 문신한 모습이죠. 결국 있는 그대로가 아니고 꾸민다는 거에요. 미(美)를 끌어내는 가장 좋은 기재가 문이란 거죠. 인문은 바로 의미를 부여하는 겁니다.

◇ "성경·불경·논어, 다이아몬드 같은 고전"

-- 고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 고전(古典)의 고(古)는 아주 오랜 시간을 말합니다. 고는 열 십(十)과 입 구(口)로 구성되는데 10대(代)를 내려온 말이라는 뜻으로 해석돼요. 그만큼 귀하기 때문에 내려오는 거죠. '착하게 살라' '항상 조심하라' '항상 겸손해라' 같은 말은 세대를 거쳐 계속 전해지죠. 인간 지혜의 결정(結晶)이라고 할 수 있어요.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대나무를 연결한 죽간(竹簡)에 글을 썼죠. 전(典)은 죽간을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모습이에요. 상 위에 얹어 놓은 거로도 보이죠. 귀한 책이라는 거예요. 즉 고전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귀한 책이라는 겁니다. 공자는 밤새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런 생각이 배우는 것만 못하다고 했어요. 옛날 사람들이 한 말과 쓴 글을 공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죠. 역사상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한 이는 노자, 공자, 예수밖에 없어요. 표현법이 다를 뿐 다 똑같아요.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보면 '보원이덕'(報怨以德)이란 말이 있어요. 원수나 원망을 덕으로 갚으라는 뜻이에요. 또 공자는 예기(禮記)에서 '이덕보원'(以德報怨)이라고 했죠. 덜 알려졌을 뿐이지 예수의 말과 다를 게 없어요. 함무라비 법전은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이잖아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죠. 자식이 죽으면 상대의 가족을 몰살시키는 이전의 무한보복법에서 훨씬 발전한 형태죠. 하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동해보복법도 완전히 넘어서는 거예요. 인류가 아무리 높은 경지에 도달해도 이를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고전은 정말 귀중하고 좋은 겁니다. 보석 중에 그런 보석이 없어요. 고전은 시간과 공간의 시험을 거친 겁니다. 지금의 베스트셀러는 10년만 지나면 아무도 보지 않고, 20년이 지나면 있었는지도 모르고, 50년 지나면 찾을 수도 없어요. 하지만 고전은 계속 출판이 되고 사람들이 보는 거예요. 대중에게서 멀어지면 더는 고전이 아닌 거죠. 다이아몬드 같은 고전은 끝까지 남게 돼요. 성경, 불경, 논어는 다이아몬드 같은 고전이죠. 인간으로 태어나서 꼭 읽어야 할 고전입니다.

◇ "한자 잘 쓰는 일본, 우리도 국한문 혼용해야"

-- 한국인에게 한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 우리가 표기문자로 처음 사용한 것이 한자입니다. 훈민정음은 원래 중국 현지의 발음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발음부호로 제작됐는데 부대 효과로 일반 백성이 사용하게 된 거죠. 일석이조가 된 거예요. 지금 중국어의 발음부호로서 한글의 역할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말이란 것만 강조하는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명나라 주원장이 나라말의 발음을 바로 잡으려고 '홍무정운'을 지었듯이 세종대왕은 '동국정운'을 만들었어요. 훈민정음 창제의 처음 의도가 바로 중국어 발음을 표현하는 데 있다는 거죠. 세종은 우리가 무장을 철저히 해서 중국을 더 깊이 알자는 차원에서 한글을 만든 거예요. 지금 그런 목적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한글 전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한자를 몰라서 원래 뜻과 다르게 사용하거나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일본과 청나라에 대한 반감으로 한자를 버렸어요. 일본은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우리를 엄청나게 괴롭혔죠. 또 청나라는 중화 민족이 아니라 만주족인데 조선 말에 속국으로 삼으려 하면서 우리를 많이 힘들게 했죠. 그런데 일본은 중국과 그렇게 싸우면서도 한자를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사용하고 있어요. 한자로 문화를 꽃피우고 있죠. 일본에서 제작돼 중국으로 역수출된 한자가 있을 정도예요. 서로 다투고 싸워도 뿌리가 연결된 거죠. 사실 일본보다는 우리가 중국에 더 가까워요. 우리는 스스로 벗어난 거죠. 손자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했어요. 상대를 알아야 싸워서 망하지 않습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피지기하고 있어요. 미국의 약을 올리지만, 진짜 싸우면 끝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싸우지 않는 거죠. 우리는 중국이라는 공룡 옆에 있으면서 그동안 외교를 잘 해왔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바짝 엎드리고 때로는 화를 내면서 외교를 해왔죠. 중국과 외교에서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한문입니다. 조상의 귀한 유산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한문을 배워야 해요. 적어도 국한문 혼용을 해야 하죠. 일본은 가나(假名, 일본어 표기용 음절문자)와 한자를 혼용하고 있어요. 오히려 유연성이나 표현력이 한문을 쓰는 중국보다 더 낫죠. 우리도 할 수 있는데 현실을 보면 너무 답답합니다.

--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쓰는 한자가 많은가요.

▲ 일례로 장원급제(壯元及第)란 단어에서 '壯元'은 틀린 글자예요. 중국인이 보면 전혀 뜻이 통하지 않아요. 장할 장(壯) 대신 상장 장(狀)을 써야 하죠. 狀은 임금에게 올리는 서류를 말해요. 옛날에는 서류를 돌돌 말았는데 종이를 폈을 때 제일 앞에 있는 것이 으뜸(元)이 되는 거죠. 그래서 장원이 1등을 뜻하는 겁니다. 장할 장을 쓰면 안 되는 거죠. 누군가 엉터리로 쓴 거예요. 이건 다산 정약용 선생이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한 말이에요. 아언각비는 우리 일상에서 틀린 말을 깨달아 고치자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이것 말고도 잘못 쓰고 있는 한자가 많습니다.

◇ "한글 창제, 중국보다 더 높은 문명국 만들기 위한 것"

-- 이런 오류를 바꿀 수 없는 겁니까.

▲ 앞으로도 계속 쓸 텐데 잘못돼 있다면 고쳐야죠. 와전(訛傳)된 것을 계속 쓸 수는 없잖아요. 한자문화권에서 우리만 이렇게 틀린 말을 쓰면 부끄러운 거죠. 이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예요. 더구나 요즘 사람들은 한자를 너무 모릅니다. 맞는지 틀린지도 모른다는 거죠. 경이 아무리 좋아도 소가 알아듣나요? 세종대왕이 "내가 이러려고 한글 만들었나" 할 것 같아요. 한글 창제는 중국보다 더 높은 문명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한 거예요. 이게 세종대왕이 바라던 세상은 아닐 겁니다.

-- 한문학자로서 바람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국한문 혼용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력이 몹시 나쁜 사람이 안경을 끼지 않고 다니는 것과 같은 거예요. 뭐가 보이긴 보이는데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 거죠. 한자 교육은 개개인에게 안경을 맞춰주는 거예요.

-- 올해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셨는데요.

▲ 제가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에요. 거절을 당해보니까 기분이 몹시 나쁘더라고요. 공자가 말한 인(仁)의 핵심 중 하나는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거예요. 그래서 거절을 못 하겠어요. 부탁을 들어주다 보니까 강의가 7개나 됐어요. 고려대, 사회기관 등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강의를 하고 있죠. 일주일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좋아하는 막걸리 한 잔 마실 시간이 없어요.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요즘 그걸 걱정하고 있습니다. 15년째 매주 수요일 고려대 평생교육원에서 무료 강의를 하고 있어요. 일반 사람들이 한문과 유학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강의죠. 썩은 밀알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하고 있습니다. 강의에는 팔십 노인도 계시고, 대학 신입생도 있고, 스님, 목사도 있어요. 보람이 큽니다. 특히 논어가 중요해 가급적 자주 강의를 마련하려고 해요. 중국 정신의 핵심이 논어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 우리는 조상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 삼국사기 서문을 보면 우리가 중국의 고사는 다 알면서 우리 것은 모르는 데 기가 차서 역사책을 쓰게 됐다고 해요. 우리나라가 맹목적인 사대의식이 너무 강해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미국 배우나 가수 이름은 알아도 증조부, 고조부의 이름은 모르죠. 지금 젊은 사람들을 보면 자기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 같은 과 친구나 학과 교수의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해요. 자기만 아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빠지고 있는 것 같아요. 국가, 사회, 민족이 걸린 문제에 대해서도 자기와 관계없다면서 참여하지 않아요. 이런 것을 개선하고 바로 잡으려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 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자의 사상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지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죠.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현실적인 길잡이가 될 수 있어요.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논어에요. 그래서 정치하는 사람은 논어를 꼭 봐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훌륭한 선조의 알려지지 않은 일화를 찾아내 알려주고 싶어요. 제가 공부했던 것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또 사람들이 사서삼경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책을 쓰고 싶어요. 중학교만 나와도 사서삼경을 보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5/14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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