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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 수학과 312년 금녀의 벽 뚫은 오희 교수>

예일대 수학과 312년 금녀의 벽 뚫은 오희 교수
예일대 수학과 312년 금녀의 벽 뚫은 오희 교수
(서울=연합뉴스) 오는 7월 1일자로 예일대 수학과에 종신직 정교수로 임용된 고등과학원 스칼라인 오희 미국 브라운대 교수. 예일대가 수학 분야 종신직 교수로 여성을 임용한 것은 이 대학이 설립된 1701년 이래 처음이다. 2013.5.29 << 미디어과학부 기사참조 >> photo@yna.co.kr

7월부터 예일대 종신직 정교수로 활동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한국인 여성 수학자가 312년간 유지된 '금녀의 벽'을 뚫고 미국 예일대 수학과에 종신직(테뉴어) 교수로 임용됐다.

고등과학원은 이 기관 소속 스칼라인 오희 미국 브라운대 교수가 7월 1일자로 예일대 수학과에 종신직 정교수로 임용된다고 29일 밝혔다.

예일대가 수학 분야 종신직 교수로 여성을 임용한 것은 이 대학이 설립된 1701년 이래 처음이다.

오 교수는 1992년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1997년 예일대 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프린스턴대, 캘리포니아공과대 등에 교수로 재직했다.

오 교수는 이날 고등과학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박사학위를 받은 모교인데다가 지도교수인 그레고리 마굴리스 교수의 학맥을 잇는다는 의미가 있어 예일대로 가게 됐다"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해 부담스러운 면도 있지만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오 교수와의 일문일답.

-- 수학에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는가?

▲ 고등학교 때 수학이 재미있었다. 다른 과목은 외워야 했는데 혼자 생각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좋았다. 광주여고 3학년 때 송현길 선생님이란 분께 수학을 배웠는데, 그 때 수학이 쉽게 느껴졌다. 선생님이 "자, 이런 문제 어떻게 하지?"하시면 손 들고 "이렇게 해요"해서 (급우들에게) 미움 받는 학생이었다.

-- 어릴 때부터 수학을 하고 싶었나?

▲ 그런 것은 아니었다. 믿거나 말거나 어릴 때는 현모양처가 꿈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특별히 뭐가 되고 싶다 이런 것은 없었다. 그러다가 대입학력고사를 봤는데, 생각보다 점수가 안 나와서 학과 지망을 어디로 해야 할까 하다가 일단 (서울대) 의대를 썼는데, 2지망은 아홉살 많은 큰오빠의 권유에 따라 수학과를 썼다. 1지망에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되고 2지망으로 수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오빠가 내게 2지망으로 수학과를 쓰라고 권유한 이유는 당시 오빠가 다니던 대학원의 교수이던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수학을 하고 나서 경제학을 하는 것도 괜찮다"고 해서였다고 한다.

1학년때 2지망으로 된 수학과를 계속 다녀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당시 학부 지도교수였던 김홍종 선생님께서 "수학은 아름다운 학문이니 일단 4년 해 보고 정 하기 싫으면 다른 것을 하는 발판으로도 좋을 것"이라고 하셨고, 1학년 때 미적분을 들었는데 재미가 있어서 계속 다니게 됐다.

-- 대학 다닐 때는 어땠나.

▲ 대학을 5년간 다녔다. 3학년 때부터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수학이 생각보다 안 어려웠고, 수학만 공부하는 인생은 너무 뻔한 것 같아서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 약자들을 도와주는 삶을 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총학생회 연대사업부 노동분과장을 하면서 학생운동에 전념한 1년간 거의 수업을 안 들어갔다. 시간이 지나니 문제 푸는 게 그립더라. 학생운동을 하면서 사회과학 공부를 하다 보니, 사회과학에는 최선과 차선은 있지만 정답이 없었고, 그래서 수학이 그리워졌다.

-- 대학 다닐 때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예일대 수학과 312년 금녀의 벽 뚫은 오희 교수
예일대 수학과 312년 금녀의 벽 뚫은 오희 교수
(서울=연합뉴스) 오는 7월 1일자로 예일대 수학과에 종신직 정교수로 임용된 고등과학원 스칼라인 오희 미국 브라운대 교수. 예일대가 수학 분야 종신직 교수로 여성을 임용한 것은 이 대학이 설립된 1701년 이래 처음이다. 2013.5.29 << 미디어과학부 기사참조 >> photo@yna.co.kr
▲1991년 학생운동을 하면서 대수학 2 중간고사를 볼 때였다. 그 때 이인석 (서울대 수학과 교수) 선생님 수업이었는데, 시험지를 받아 들었더니 답을 쓸 수 있는 게 없어서 답 대신 장문의 편지를 썼다. "이러이러해서 수업을 못 들어 오고 이런 상황인데, 이 땅의 민중을 위해서 옳은 길로 가려고 합니다. 사랑스러운 제자로 생각해 주십시오" 뭐 이런 식으로 그 때 내가 옳다고 생각하던 것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인석 선생님과 마주쳤는데 "편지 잘 봤어요" 하시는 거다. 나중에 내가 학교를 남들보다 1년 더 다니면서 유학 준비를 할 때 정말 강력한 추천서를 써 주셔서 예일대 박사과정에 갈 수 있도록 해 주신 분도 이 선생님이다. 나중에 미국 있을 때 그 분이 내게 그 때 답안지를 택배로 보내 주시면서 "다시 읽어 보니 오희 선생이 그 때 참 명문을 썼던 것 같다"고 하시더라. 지금껏 그 답안지를 보관하고 계셨다니 깜짝 놀랐다.

-- 학생운동을 하면서 얻은 것은 없나.

▲ 학생운동을 하면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거나 정세분석을 하면 "핵심고리를 잡아라"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는데, 수학 문제 풀 때도 마찬가지다. 가장자리를 아무리 두드려 봐야 소용 없고, 핵심고리를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

노동자 연대활동을 했기 때문에 구로공단에 많이 갔는데, 학생운동 하기 전에 가졌던 선입견과 전혀 달리 공장에서 일하는 남녀 노동자들이 정말 똑똑하더라. 이분들이 머리가 안 되는 게 아니고, 상황이 안 돼서 공부를 하지 못하는 것이더라. 누가 잘나서 높은 자리로 가고 못나서 낮은 자리에 있고 그런 게 아니더라. 그래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조건과 배경을 가지고 함부로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실 여성 수학자들과 과학자들 등 여성의 능력이 과소평가되는 것도 그런 잘못된 편견 때문이다.

-- 지금 하고 있는 연구 분야를 설명한다면.

▲ 현대 수학에서는 분야별로 학문적 교류를 통해 새로운 접근을 하는 것이 중점이 되고 있다. 내가 하는 분야도 뭐라고 딱 찍어서 얘기하기가 힘든데, 정수론이나 기하학의 문제들을 고전적 방법 말고 동역학(다이내믹스)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영어로는 호모지니어스 다이내믹스(homogeneous dynamics)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아직 용어가 없다. '리군론'(Lie Group Theory), '에르고드 이론'(Ergodic Theory) 등 분야와도 관련이 있다.

-- 이번에 예일대로 옮기기로 결심한 이유는.

▲ 예일이 박사학위를 받은 모교이기도 하고, 필즈상도 받으신 그레고리 마굴리스 교수가 내 지도교수였다. 그 분이 내가 오는 것을 원했는데, 그 분의 제자로서 동료로 간다는 것도 영광스러웠고, 또 내가 하고 있는 분야가 마굴리스 교수를 통해 이어지는 학맥을 잇는다는 의미가 있다.

-- 수학을 공부하는 방법에 관해 얘기한다면.

▲ 내가 수학자라고 하면 미국 사람들은 "당신 천재군요"라고 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 수학 참 못했는데"라고 한다. 어느 나라나 대중은 수학을 멀리 느낀다.

수학 잘하는 방법 물어보면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말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서점에 가면 공부를 잘하는 법에 관한 책 많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걸 읽어도 자신에게 적용을 하지 않는다. 가장 뛰어난 수학자들은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시간을 투자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 방법인데, 그것은 좋아해서 계속 생각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solatido@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29 13:1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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