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실시간뉴스]

최종업데이트YYYY-mm-dd hh:mm:ss

검색

사회(사건/사고)

뉴스 홈 > 사회 > 사건/사고

<새해엔 다시 희망> ③"'고맙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듣고 싶어요"

'감정노동자' 전화상담원들의 새해 소망…"가족이라 생각해줬으면"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새해 소망이요?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수화기 건너편에 계신 분이 자기 가족이나 자식이라고 생각하면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시면 충분하죠."

지난달 29일 기자가 찾아간 한 유료방송업체 콜센터 사무실은 나긋나긋하지만 분주히 고객을 응대하는 전화상담원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간혹 목소리가 높아지는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상담원들은 심호흡하고 얼굴에 미소를 다시 올리고 나서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전화상담원을 포함한 텔레마케터는 작년 한국고용정보원이 국내 730개 직업 종사자들의 감정노동을 분석했을 때 가장 감정노동 강도가 센 것으로 나타난 직업이다.

감정노동은 고객의 기분에 맞추거나 기업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억제해야 하는 근로행위를 말한다.

이들은 서비스에 불만을 품은 고객들이 건 전화를 받고 안내하는 일을 하는 만큼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대표 직업으로 꼽힌다.

일반 민원 상담을 하는 김모(여)씨는 벌써 1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이라 웬만한 전화를 겉으로는 흔들림 없이 받지만 속은 타들어가는 경우가 여전히 있다고 말한다.

전화상담 중인 텔레마케터 김씨.

이날 점심을 먹고 들어온 김씨가 받은 첫 전화는 60대 여성에게서 온 전화였다.

가입자 명의가 잘못됐다는 항의로 전화를 시작한 이 여성은 '너희는 다 사기꾼이다'는 말을 반복하며 욕과 반말을 섞어 전화를 이어갔다.

웃는 낯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통화를 마친 김씨는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라며 "전에 한번은 어떤 여성 고객이 쌍시옷 자가 들어간 욕을 마구 퍼부어서 이틀 동안 가슴이 벌름거려 잠도 제대로 못 잔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김씨의 동료 우모(34)씨와 홍모(35·여)씨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우씨는 업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일반 상담원들이 혼자 처리하기 어려운 고객들을 인계받아 대응하는 '고객만족팀'에서 일한다.

앞선 전화에서 불만을 해소하지 못해 화가 많이 난 고객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아 일반 상담원들보다도 스트레스가 더 크다.

그나마 남자라 성적인 표현은 듣지 않지만 조롱과 비아냥거림은 우씨도 견디기 쉽지 않다.

우씨는 "경쟁사나 다른 직업군과 비교하면서 비하 발언을 하시는 고객들이 종종 있는데, 욕보다 그게 더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다른 상담원들은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만 우씨가 있는 고객만족팀 직원들은 고객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야 한다.

통화할 때 우씨는 마치 고객이 앞에 있듯 손짓을 해가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간혹 표정이 어두워지는 때도 있었지만 고객을 응대하는 목소리에는 조금도 그런 기색이 묻어나지 않고 늘 공손함을 유지했다.

우씨는 "전화하기 전에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시작한다"며 "통화 중 당황하지 않도록 관련 내용을 충분히 공부하고 나서 전화하고, 통화 중 감정이 너무 격해지면 수화기를 가리고 심호흡을 한번 한 뒤 다시 응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새 회사의 잘못을 문제 삼아 무리한 금전적인 요구를 하는 고객들이 늘었다"며 "회사가 제시할 수 있는 보상의 한도가 있는데 이미 스스로 기준을 정해놓고 그에 충족되지 않을 때 불만을 우리에게 쏟아부어 난감할 때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우씨의 새해 소망은 소박하다. 전화 상대방이 자기 가족들에게 말하듯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소망을 묻는 말에 그는 "전세금이나 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홍씨는 7년째 전화상담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욕설이나 비아냥거리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손발에 식은땀이 나면서 떨린다.

그는 올해 육아휴직을 마치고 일터로 복귀했다.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곳은 그가 선택한 일터이자 삶의 일부분이다.

홍씨는 "하루에 80번 정도 통화를 하면 10번 정도는 기분이 나쁘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5번 정도는 시간을 갖고 추슬러야 할 정도로 감정이 격해진다"며 "반말, 욕설, 조롱 섞인 말, 성적인 표현 등 종류도 다양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근무한 지도 오래됐으니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욕이나 반말을 들으면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나' 혹은 '내가 왜 이런 얘기를 듣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며 "신입 중에는 불쾌한 전화를 받은 뒤 우는 직원들도 꽤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화상담 중인 텔레마케터 홍씨.

그래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두 아이를 보면 힘을 낸다고 한다.

그는 "새해에는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모든 콜센터 직원들이 한 번 더 웃으면서 전화를 받는 경우가 많았으면 한다"며 "고객들도 언짢은 일들이 적어져 기분 좋게 전화할 수 있는 마음 편안한 한 해가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이들은 작년 서비스직에 대한 갑질 사례가 언론 등을 통해 소개되면서 이슈가 되는 것을 봤지만, 이곳에 전화를 거는 고객들의 태도는 그렇게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서비스직 노동자들은 고객과 얼굴을 마주하면서 대화하니 고객도 함부로 대하기 어렵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해도 주변에서 이를 보고 말릴 수가 있다.

하지만 전화는 두 사람만이 하는 것이고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상대방이 마치 자동응답시스템(ARS)에 말하듯 더 함부로 대하는 것 같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홍씨는 "너무 말이 심하면 법적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는 얘기를 해도 '설마 그러겠어'라고 다들 생각하는 듯하고, 실제로도 법적 대응까지 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전화상담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물론 이렇게 힘든 전화만 받는 것은 아니다.

여러 통의 상담 전화를 이어가던 김씨가 갑자기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는 말을 연발하며 환하게 웃었다.

김씨는 "나이 많은 남성분이었는데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맙다며 회사가 증정한 상품권을 되레 저에게 주고 싶다고 하시더라"며 "이런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일하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가장 큰 힘을 주는 것은 이런 고객의 '고맙다'는 따뜻한 한 마디다.

"고객이 불편함이 있던 부분이 저로 인해 해결돼 고맙다는 얘기를 들으며 기분 좋게 수화기를 놓을 때가 가장 보람차고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kamj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1/01 08:11 송고

광고
광고
댓글쓰기

댓글쓰기

배너
비주얼뉴스
  • 포토
  • 화보
  • 포토무비
  • 영상
배너
AD(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포토
0/0
AD(광고)
광고
AD(광고)

위키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