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환 기자 =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린 연극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연출 최용훈)가 무대 위에 올랐다. 작품은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젊은 극작가 전'의 첫 번째 공연으로, 윤미현 작가가 대본을 썼다.

마을 사람들에게 '광주리 여자'로 불리는 할머니가 작품의 주인공이다. 할머니는 평생을 광주리 행상꾼으로 살며 자식을 키워냈다. 세월이 흘러 자식에게 집까지 내어줬지만, 자식들은 할머니를 낡은 신발 밑창처럼 떼어내지 못해 안달이다. [공읽남] 연극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 [통통영상] [https://youtu.be/oEpIl2yf_ok]

화가 난 할머니는 집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며느리는 딸 '미미'의 교육비를 대느라 돈이 없다며 도리어 타박이다. 미미는 서른이 넘도록 취업을 하지 못한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다. 할머니의 아들인 미미의 아빠는 얼마 전 정년퇴직을 했다. 생계 대책은 뒷전인 채 막장 TV 드라마에만 빠져 산다.

집을 돌려받기가 힘들어진 할머니는 독립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광주리를 들었다. 광주리 속에 담긴 물건들은 다름 아닌 아들 집에 있는 세간들이다. 할머니는 자식들 몰래 집안 물건을 광주리에 담아 팔기 시작한다. 과연 할머니의 발칙한 복수극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작품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등장인물과 배경 모두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오랫동안 다양한 군상들을 관찰하며 작품을 기획한 작가의 눈썰미가 돋보인다.

대학원을 다니던 미미는 갑자기 모든 것을 그만두고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미미에게는 말 못 할 사정이 있다.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간 대학원에서 지도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지만,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다'며 외려 미미를 내쫓았다. 사실 미미가 10년째 백수로 살아온 이유는 따로 있다. 일해도 월급이 적어 일을 안 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미미의 부모도 어려운 사정이 있다. 50대 나이에 사실상 회사에서 잘린 아버지는 더는 일 할 곳이 없다. 방문판매라도 해보겠다며 전 직장동료를 찾아갔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스스로 삶을 막장이라 외치는 아버지는 그렇게 세상과 등을 진다. 미미의 어머니는 어떠한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값싼 식료품을 찾아다니는 것뿐,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작품 속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희망적인 인물이 바로 할머니다. 남은 삶을 위해 집안의 물건을 팔아 돈을 모으는 할머니의 모습은 당혹스러울 만큼 현실적이다. 몰래 빼내온 물건을 광주리에 싣고 동네 홀몸노인들을 대상으로 장사한다. 그것이 쓰다 남은 치약이건 조미료이건 상관이 없다. 할머니는 소외된 이들에게 물건을 건네며 안부를 묻고 새로운 희망을 속삭인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굶는 연습을 하는 미미의 등을 밀어 무료 급식소에 줄을 서게도 한다. 그런 면에서 할머니의 광주리는 고된 삶 속에서도 악착같이 살고자 하는 몸부림인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와 같다.

최용훈 연출은 "현실적인 캐릭터가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연극"이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그러나 작품은 무기력하고 약한 인물들을 향해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소심하던 적극적이든 그들 나름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그런 그들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하는 질문을 던지는 데 초점을 둔다. 그리고 관객들은 깨닫게 된다. '희망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무엇보다 극복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들의 연기도 구성지고 질박하다. 광주리 할머니 역을 맡은 홍윤희는 디테일한 분장과 연기로 극의 개연성을 높였다. 미미와 미미 분신 역을 맡은 이지혜와 조영은 등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웃음을 끌어냈다. 작품은 오는 23일까지 서울 용산구 서계동 소극장판에서 만나 볼 수 있다.

kkk@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4/14 18:3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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