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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우리동네] 표고버섯과 문화재의 한라산 '혈투'

1967년 백록담 밑 해발 1천800m까지 표고버섯 재배 수출 계획
"눈앞 이익 위해 미래자산 희생할 수 없다"는 보존 주장 승리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한라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세계유산 중 자연유산 등재를 가능케 한 한라산 원시림이 한때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한라산 백록담
한라산 백록담2011년 해양수호 최첨병인 해양경찰 초계기에서 바라본 한라산 백록담. [연합뉴스 자료사진]

가난했던 그 시절 '수출증대'를 위해 백록담 바로 밑까지 표고버섯 재배장을 만들 계획이 추진됐다. 하지만 이 담대한 계획을 온몸으로 저지하고 나선 이들이 있었다.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이었다. 원시림 보존을 명분으로 내건 문화재관리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심을 보는 가운데 표고버섯과 명운을 건 혈투를 벌여 승리했다.

불과 반세기 전 일이다. 그때 표고버섯이 승리했더라면 지금의 한라산은 사뭇 다른 풍광이었을 것이다. 물론 세계유산 등재도 없었을 수 있다.

◇ 수출증대 위한 표고버섯 재배와 문화재 보존 전쟁

제주도 당국은 1967년 해발 1천950m인 한라산 백록담 턱밑인 해발 1천800m까지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계획을 세웠다. 사업 목표는 한라산을 표고버섯 재배장으로 만들고, 표고버섯을 수출해 연간 20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내용이었다.

5·16 군사쿠데타 때 소위 '혁명 주체세력'으로 인정받은 구자춘 제주도지사 시절 계획이다. 구 지사는 표고버섯 재배해 수출증대를 이룩하겠다면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천연기념물 제182호인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에 대한 문화재 지정을 해제해달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도내 표고버섯 재배 농민과 일부 언론 등도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한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문교부 외국으로 설치된 문화재관리국은 1966년 10월 12일 한라산을 중심으로 해발 800∼1천300m 이상 되는 91.654㎢ 면적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문화재관리국은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은 그대로 보존돼야 한다며 제주도 계획에 반대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미래자산인 한라산 원시림을 희생할 수 없다고 버텼다.

정기영(78) 전 문화부 문화재관리국장은 공무원 3년 차이던 그 시절을 아직도 선명하게 회상했다.

그는 "한라산에 바둑판처럼 선을 그어 번호를 매겨서 표고버섯을 재배하기로 돼 있었다"며 "한라산을 다 벗겨 먹는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표고버섯 종균을 심은 나무는 5∼6년이면 영양분이 없어져 폐목이 되고 그러면 또 종균을 심을 나무를 확보하기 위해 나무를 잘라내야 한다"며 "계획대로 됐다면 지금쯤 한라산 원시림은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 문제는 결국 문화재관리국의 승리로 끝났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구 지사 주장과 문화재관리국의 설명을 듣고 나서 구 지사에게 양보하라고 명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1년에 한 번씩 각 시·도와 중앙부처 사이 의견 대립이 있는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회의를 주재해 그 자리에서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것이다.

1960∼1970년대 국토개발을 추진할 때 기관들은 국가 선진화를 위한 개발에 매달렸다. 당시 농림부는 표고버섯 재배 농민들에게 특용작물 지원금을 내려보내고, 상공부는 수출산업을 육성한다면 지원금을 내려보냈다. 문화재관리국은 한라산 보존을 위해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임금님께 진상한 한라산 표고버섯
임금님께 진상한 한라산 표고버섯(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제주시 애월읍 한라산 중턱의 영농조합법인 한라표고 농장에서 다 자란 표고버섯을 수확하고 있다. 2017.11.7

◇ 임금님 진상품 표고버섯과 제주도

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은 1421년 제주에서 별공으로 바치던 참나무버섯을 면제하라고 명했다. 참나무에서 난 표고버섯이 제일 질이 좋아 참나무버섯이라고 불렀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표고버섯을 참나무버섯이라고 한다.

이때 임금한테 진상한 표고버섯은 도민들이 한라산 천연림에서 채취한 자연산이었다.

한라산 표고버섯 인공재배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시작했다.

일본인이 만든 '제주도여행일기'라는 책은 1900년대 초기 일본인 버섯재배업자의 한라산 표고버섯 재배를 자세히 설명한다. 당시 일본인 버섯재배 기술자들이 한라산에 살며 표고버섯을 생산했고, 말린 표고버섯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1924년 전라남도 제주도청에서 발행한 '미개의 보고 제주도'는 "한라산 중턱에 광대한 산림이 있어 버섯재배업이 가장 다망(多望)하다"고 기록했다. 한라산 버섯재배가 식민지 산업경영의 하나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선총독부는 1919년 한라산 표고버섯을 특산품으로 지정해 재배를 장려했다. 표고버섯 재배에 뛰어든 일본인들은 한라산 동남부 화전 위쪽에서 5천㏊에 달하는 재배장을 경영했다. 현장에서 건조된 표고버섯은 포장돼 선박편으로 서귀포에서 오사카로 운송됐다. 오사카에서는 위탁판매를 거쳐 중국으로 수출됐다.

일본인들이 한라산에서 생산한 표고버섯 양은 1936년 2천800㎏, 1937년 2천600㎏, 1938년 3천500㎏이었다.

제주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일본인들이 물러가고 나서 본격적으로 표고버섯 재배를 시작했다. 1961년 언론 기록을 보면 당시 해발 700m 한라산 중턱 밀림에서 정부 후원 아래 표고버섯이 대규모로 재배됐다. 38개 재배장에서 연인원 20만 명이 동원돼 생산되는 표고버섯 양은 약 6만㎏으로, 국내 생산량의 80%를 차지했다.

표고버섯은 대부분 동남아와 홍콩 등지로 수출됐다. 당시 2년 치 수출액은 21만800달러였다. 표고버섯은 1960년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외 수출품이었다.

그러나 한라산 표고버섯 재배는 무분별한 벌채로 이어졌다. 한라산에 자생하는 졸참나무와 서어나무 등이 무참히 잘려나갔고, 훼손 면적은 해마다 늘었다.

백록담 자생 멸종위기종 돌매화나무
백록담 자생 멸종위기종 돌매화나무(제주=연합뉴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의뢰한 한라산천연보호구역 기초학술조사에서 촬영된 백록담 자생 멸종위기종 돌매화나무. 2016.12.16

◇ 세계자연유산 등재와 탐방객 증가

한라산은 문화재보호법상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4년여 뒤인 1970년 3월 국립공원으로도 지정됐다. 국립공원 면적은 153.332㎢로, 천연보호구역보다 약 1.6배 정도 넓다.

국립공원 내에는 양서·파충류 20종과 곤충류 2천665종, 관속식물 144과 470속 895종 3아종 20변종 13품종이 자생한다. 관속식물은 양치식물 110종, 나자식물 11종, 단자엽식물 200종, 쌍자엽식물 610종으로 세분된다. 참매, 팔색조, 원앙, 검독수리, 황조롱이, 매 등 조류도 다양하게 분포한다.

문화재와 국립공원 양쪽의 협공에 제주도는 마침내 1976년 한라산국립공원 내 표고재배 중단을 선언한다. 이에 국립공원 내 11개소 표고버섯 재배장은 폐쇄됐고 1993년에는 한라산에서 표고버섯 자목 벌채도 금지했다.

2002년 12월에는 한라산국립공원을 포함한 해발 200m 이상 산간 지역과 천연기념물인 영천과 효돈천 주변 지역, 서귀포시립 해양공원(섶섬, 문섬, 범섬)과 함께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됐다.

2007년 6월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제31차 총회에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세계유산 중 자연유산으로 등재했다. 한국이 등재한 세계유산은 2017년 현재 12곳이지만, 자연유산은 제주가 유일하다.

1999년 5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산하 '인간과 생물권계획위원회'가 한라산 생물권보전지역 지정과 관련해 제주도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한라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문제를 처음 거론한 뒤 8년 만의 쾌거였다.

2010년 10월에는 한라산을 포함한 제주도내 9개 지질명소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받았다. 이로써 한라산은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에 올랐다.

한라산 탐방객은 꾸준히 증가했다. 1974년 2만3천466명이던 탐방객 수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고 난 다음 해 55만7천656명까지 늘었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던 다음 해 탐방객은 92만5천686명으로 전년도보다 무려 12만799명이나 늘었다. 2010년에는 탐방객 100만명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탐방객 주차료와 야영장 및 샤워장 사용료, 인증서 수입금, 포토존 수입금 등을 합친 수입은 32억원을 넘어섰다.

제주도는 세계유산이자 국립공원인 한라산 입장료를 1인당 '2만 원±α'를 받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환경자산의 가치를 보전하고,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며, 수요를 억제해 관광문화의 품격을 향상한다는 계획이다.

1960년대 표고버섯 재배 계획이 실행됐다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지정과 세계자연유산 등재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고, 세계인이 인정하는 브랜드 가치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일본인들도 탐낸 한라산 표고버섯의 명성이 사그라든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012년 현재 제주 표고 생산량은 전국 생산량의 0.3%에 지나지 않는다. 뒤늦게나마 2014년부터 제주시가 표고산업 발전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표고버섯 재배 농가에도 희망의 불빛이 비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시대를 제주가 어떻게 열어갈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khc@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11/25 11: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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