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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우리동네] 천 년을 이어온 바다의 맛…울산 돌미역

북구 앞바다 미역 전국적 명성…탄성 좋아 일명 '쫄쫄이 미역'
산후조리용으로 인기…해녀 노령화로 차츰 명맥 끊길까 고민

미역 말리는 제전마을 어민
미역 말리는 제전마을 어민[국립민속박물관 제공=연합뉴스]

(울산=연합뉴스) 김용태 기자 = "울산의 곽전(藿田)은 본디 한지(閑地)가 아니라 진공(進供)하는 데 쓰이는 것을 오로지 여기에서 가져가는데…."

조선 숙종실록에 나온 울산 미역과 관련된 구절이다.

여기서 '곽전'이란 미역을 따는 곳을 말한다. 또 '한지'는 주인이 없는 땅, '진공'은 지방의 토산물을 임금이나 상급 관청 등에 바친다는 말이다.

풀이하면 울산 미역이 당시 궁에 오른 진상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2권 울산군 편에도 울산 미역이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대목이 보인다.

이처럼 과거 울산 미역의 품질은 상당히 높이 평가받아 명성이 자자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흘러 오늘날 울산은 '산업수도'를 표방하고 조선업과 자동차산업 중심지가 됐다.

그러나 산업화 물결 속에서도 울산 앞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어민들은 아직도 남아 있다.

특히 울산시 북구의 제전마을을 비롯한 어촌에서는 과거의 명성을 잇는 맛 좋은 미역을 여전히 생산한다.

제전마을 앞바다 미역 채취 모습
제전마을 앞바다 미역 채취 모습[국립민속박물관 제공=연합뉴스]

◇ 울산 북구 바다는 '돌미역' 최적지

매년 4∼5월이 되면 울산시 북구 구유동 제전마을에서는 어민들이 미역 말리기에 여념이 없다.

어민들은 소형 작업선으로 항구와 미역바위를 오가며 쉴 새 없이 미역을 따서 운반한다.

마을 물양장에서는 주민들이 미역을 건조하는 작업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습을 볼 수 있다.

미역 채취는 제전마을 주민들의 가장 중요한 어업 활동이다.

마을 모든 일정이 미역 채취에 맞춰 움직일 정도다.

그 노력에 걸맞게 제전마을 미역은 전국에서 최상품으로 인정받는다.

제전마을뿐 아니라 판지, 우가, 복성 등 울산 북구 어촌에서 생산되는 미역들은 모두 으뜸으로 꼽힌다.

이들 미역은 자연산 돌미역이다.

돌미역은 해녀들이 바위에서 자라는 것을 직접 채취하는 방식으로 수확이 이뤄진다.

북구 해안은 암반이 많아 해조류가 성장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다.

특히 이곳 돌미역을 일명 '쫄쫄이 미역'이라고 부른다.

쫄쫄이 미역은 줄기가 길고, 잎과 줄기 폭이 좁고 두꺼운 데다 질감이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오래 끓여도 풀어지지 않고 쫄깃한 탄력이 유지돼 산모용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이에 반해 일명 '펄 미역'이라 불리는 미역은 잎이 무성하고 넓다.

같은 종류의 미역이라도 자라는 환경에 따라 펄 미역이 되고, 쫄쫄이 미역이 되기도 한다.

동해안 중북부 지역은 펄 미역이 많이 채취되고, 울산 북구 바다는 쫄쫄이 미역이 더 많다.

북구 앞바다는 수심이 얕고 물이 맑아 일조량이 많다. 또 물살이 거칠어 미역의 육질을 단단하게 만든다.

울산 바다에서 나는 쫄쫄이 미역
울산 바다에서 나는 쫄쫄이 미역[국립민속박물관 제공=연합뉴스]

어민들의 노력도 좋은 상품의 미역을 생산하는데 한몫한다. 어민들은 미역이 자라는 미역바위에 붙은 패류나 규조류 등을 제거해 미역 포자가 쉽게 붙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기세작업'이라고 하는데 매년 11월이면 해녀들이 호미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 바위를 긁어내는 작업을 한다.

포자가 바위에 촘촘히 안착하면 미역의 간격이 좁아져 쫄쫄이 미역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곳 어민들은 자신들이 채취하는 미역이 다른 지역과는 비교되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 울산 박씨 가문은 '미역 부자'

돌미역이 붙어 자라는 바닷속 암반을 미역바위라고 하는데, 울산에서는 곽암(藿巖)이라고도 부른다.

'흥려승람(興麗勝覽)', '학성지', '울산박씨세보' 등의 문헌과 사료에 따르면 울산 박씨 시조인 박윤웅이라는 인물이 왕건이 고려를 세우는 데 협조를 해 곽암 12구를 하사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는 곽암에 논·밭처럼 소유주가 있었으며, 왕이 신하에게 상으로 하사할 정도로 곽암의 경제적 가치가 높았다는 점을 말해 준다.

고려 시대에도 울산에서 미역 채취가 활발히 이뤄졌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울산 박씨 문중은 이후 대대로 미역바위를 소유했지만, 조선 영조 때 어사 박문수가 주민들의 호소를 듣고 바위를 나라에 환수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3년간 미역 흉작이 들자 바위 1구를 다시 박씨 문중에 돌려줬다는 일화도 있다.

제전마을 옆에 있는 판지마을 앞바다 속 곽암은 '양반돌' 혹은 '박윤웅돌'이라고 불리는데,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돼 있다.

지금도 이 바위에서 미역이 채취되고 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미역을 제공한 셈이 된다.

곽암에서 돌미역 수확하는 해녀
곽암에서 돌미역 수확하는 해녀[울산시 북구 제공=연합뉴스]

미역바위는 돌미역을 채취하며 살아가는 어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터전이나 다름없다.

제전마을 등 어촌 주민들은 매년 추첨을 통해 각자 미역바위를 배정받는다.

미역바위에 따라 생산되는 돌미역은 질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추첨일을 전후해 어민 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마을별로 차이가 있지만 미역바위당 5∼6명, 많게는 7명 정도가 배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령으로 노동이 어렵거나 다른 생업을 우선으로 하는 주민은 추첨을 포기하는 대신 소정의 돈을 받기도 한다.

1960∼70년대에는 울산 북구 대부분의 마을에서 수면 위로 솟아 있는 갯바위를 폭파해 바닷속으로 가라앉히기도 했다.

미역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미역바위를 만든 것이다.

건조되고 있는 돌미역
건조되고 있는 돌미역[국립민속박물관 제공=연합뉴스]

◇ 채취 즉시 팔리는 미역…홍보도 필요 없어

울산 북구 앞바다에서 생산된 돌미역은 대부분 대구 서문시장에서 판매된다.

서문시장은 미역이 거래되는 전국 시장 중 규모가 가장 크다. 2016년 기준 60여 개 미역판매업소에서 울산 돌미역을 판매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쫄쫄이 미역이 생산되지만 울산 미역이 그중 최상품으로 친다.

또 울산 돌미역은 판매를 위한 별도의 홍보가 이뤄지지 않는다. 홍보하지 않아도 생산 즉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 때문이다. 오히려 물량이 부족할 정도다.

또 울산의 많은 기업체에서는 선물용으로 돌미역을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어민들도 굳이 홍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미역 말리는 판지마을 주민들
미역 말리는 판지마을 주민들[울산시 북구 제공=연합뉴스]

울산시 북구는 각 마을에 돌미역을 포장하는 박스를 지원한다.

북구 인증 마크가 찍힌 동일한 도안의 박스에 포장하면 돌미역의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해녀의 집'을 만들어 해녀들이 잠수복을 갈아입거나 쉴 수 있게 지원한다.

이처럼 높은 명성을 얻고 있는 울산 돌미역이지만 미래가 마냥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미역을 따는 해녀들의 노령화로 물질 횟수가 점점 줄어들지만 일을 이어받을 해녀가 드문 탓이다.

마을 경제에서 미역이 차지하는 비중도 예전보다는 점차 작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울산 북구 관계자는 "현재까진 돌미역 생산량이 줄어들거나 하는 큰 변화는 없는 상태"라면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녀의 명맥이 끊어졌을 때를 대비한 고민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yongta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4/14 11: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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